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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생활/Phuket

싱가포르에서 입국 거부당한 악몽_#3 <부제 : 결국 이방인>

by Anchou 2017. 8. 29.


한 시간 정도 정신없이 잠에 취했었나 봅니다.

곧 푸켓 국제공항에 도착한다는 안내 멘트와 함께 비행기는 분주히 하강을 시작했습니다.

옆 자리에 앉은 남편은 고통스럽게 잠에서 깼고

머리와 귀의 엄청난 통증을 호소했습니다.

고혈압이 심한 남편은 아마도 싱가포르 ICA에 억류되었을 당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봅니다.

걱정스런 마음에 손과 목 뒷쪽을 마사지해주며 그렇게 공항에 가까스로 도착했습니다.

탑승할 때 부탁한 승무원의 요구대로

우리는 다른 승객들이 모두 내린 후 가장 나중에 내리게 되었는데

무슨 영문에서인지 내려서도 여권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항공사 직원은 여권과 함께 우리를 이미그래이션 직원에게 인도했고,

우리는 그 길로 푸켓 이미그래이션 사무실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겐

워크퍼밋, 정상적인 Non-B 리엔트리 비자가 첨부된 여권이 있습니다.

당당하죠.

이미그래이션 직원은 가장 직급이 높아보이는 사람에게 우리를 데려갔고

그 상관은 서류를 조금 들여다보더니

우리에게 태국말을 할줄 아는지 물어봅니다.

"조금 할줄 알아요."라고 답했고

영어를 할줄 아는 아랫직원의 통역과 일부 통역해주지 않는 이야기는 

그간 익혀온 태국어 어휘의 바닥까지 끌어모아 집중해서 알아듣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통역해주는 아랫직원 외에 아무도 우리에게 어떠한 사항도 물어보지 않았고,

자기네들끼리 한국 사람들인데 어떻게 처리할까를 상의하는 듯 보였습니다.

한참 뒤 또 다른 직원의 입을 통해

돈이 있느냐는 질문만을 받게 되었지요.

지갑에는 태국돈 6,000밧(한화 20만원 정도)이 있었기 때문에

그 돈을 보여줬더니 정색을 하며 

"1인당 200,000밧을 내야한다. 아니면 바로 한국으로 보낼거야."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잘못들은 게 아닐까?!

다시 한 번 금액을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았습니다.

1인당 200,000밧이면 우리나라 돈으로 합해서 1400만원이 넘는 돈입니다.

그 돈을 가지고 다닐 일도 만무하거니와

바로 ATM기에서 뽑을 수도 없는 금액이기에

지금 줄 수 없다고 답했고,

그들은 "그럼 너희 집으로 보낼거야"라고 협박했습니다.

신랑이 "우리 집은 여기야."라고 말하자,

상관은 "여긴 너희 집이 아니야. 여긴 내 나라이지!"라며 소리를 높였습니다.

아... 그런거구나...

맞는 말이지만, 그래도, 순간 뭔가 억울한 회의감이 밀려옵니다.

해외 생활 하면서 떳떳하고 싶은 마음에

누구보다 정직하게 세금내고, 

나라가 요구하는 사항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동남아에서 서민 중의 서민으로 지내야만 했습니다.

푸켓에 사는 다른 교민들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며 

고지식하다고 혀를 찰 때에도 내가 사는 나라니까 애정을 갖고 뭐든지 도움이 되려 했습니다.

없는 생활비를 쪼개어 중부지역 홍수 때에도 구호물품을 보내고,

비치에 나가면 항상 쓰레기를 주워왔습니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우리는 그저 이방인일 뿐.

......

우리가 답이 없자,

"오늘 밤 비행기표로 보낼거야(지금이 밤인데...버스표도 아니고;;;)"라며

또 다시 압박해왔습니다.

급기야 앉아있던 허벅지는 부르르 떨리고, 어떻게 이 상황을 정리해야 할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밤 10시가 조금 안된 시각,

어디로 도움을 청해야할지 막막해 하다가 핸드폰으로 대사관에 연락을 했습니다.

어렵게 당직 영사관 업무를 보는 직원과 전화가 연결되었고,

다행이 목소리가 젊은 영사관 직원은 우리의 상황을 일단 잘 들어주었습니다.

마음 속으로 젊은 사람이라 다행이다 생각하면서 

다급하게 상황을 설명합니다.

'우리는 합법적으로 푸켓에서 일을 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영문도 모른 채 입국 거부를 당했고,

그 이유로 푸켓 이미그래이션에서도 입국 거부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들이 요구하는 서류는 모두 소지하고 있는데

이미그래이션 직원은 1인당 200,000밧을 당장 요구하고 있다.

당장은 어렵다고 답하니까

우리를 추방시키겠다고 한다.

불법 행위를 저지른 일은 결코 없지만

추방시키겠다면 한국으로 돌아갈 의사가 있다.

하지만 수년 넘게 지내온 집에서 짐 정리할 시간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몇 일 정도 기한을 주면 정리해서 출국하겠다.'라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영사관 직원은 당황하면서 응??!!

'정말 그 금액을 요구했느냐.

너희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냐.

원래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이민국 업무나 그들이 내린 판단은

어떤 재제를 할 권한이 없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개인 당 200,000밧을 요구했다면

그와 관련된 해당 법은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떤 근거에 의한 금액인지 대신 물어봐줄 수는 있다.

그 상관과 직접 통화하게 해달라.'

나는 바로 핸드폰을 그 상사에게 전달했고

그들은 짧은 통화를 마쳤습니다.

다시 핸드폰은 나에게 넘겨졌고

영사관 직원은 

"이미그래이션에서 당신들의 최소한의 체류금액이 있는지

확인 차 20,000밧을 보여달라고 요구한 것이라 한다.

아마도 잘못 알아들은 듯 한데

그들의 요구대로 해주고 해결되면 결과를 꼭 다시 한 번 알려주길 바란다.'

라는 설명과 함께 통화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헐...! 설마 2만밧과 20만밧, 그리고 달라는 것과 보여달라는 것 차이를 못알아들었겠어요?!

그것도 2번이나 물어본 내용을요!)


이미그래이션 상관은 다시 우리의 서류를 만지작 거리더니

통역하던 여직원을 통해

"지금 1인당 20,000밧씩 보여줄 수 있느냐."라고 물었고

- "응, 근데 통장은 없고 체크카드라서 돈을 뽑아야해."

- "이미그래이션 밖에 ATM기기가 있으니까 직원 동행하에 얼른 다녀와."

- "넵"

흑흑.

이렇게 40,000밧을 출금해서 보여줬고

이미그래이션 상관은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너 내가 도장 찍어주면 얼마 후에 다시 도장을 받는지는 알고 있어?

다음엔 지역 이민국에 가서 신고해. 비자 연장 똑바로 하고." 라고 말했고,

나는 잘못을 저지른 학생이 교무실에서 혼날 때 마냥

고개를 떨군 채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 이제 집에 가는건가...?

아직 아니요.

무슨 생각인지 그들은 기다려보라는 말과 함께 

우리의 모든 서류를 복사해 갔습니다.

찜찜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지만

그 절차 후 우리는 이미그래이션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성심껏 도와주던 통역하던 여직원에게

1,000밧이라도 쥐어주려 했지만

이미그래이션을 나오는 순간까지 마킹하던 다른 직원들 탓에

그 여직원에게는 고맙다는 인사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상황이 이렇게 마무리 되자

머리는 지끈지끈, 다리는 후들후들...

괜찮냐는 신랑의 위로에 얇게 싸여있던 눈물샘까지 그만 터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시 영사관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잘 해결되었다고,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실은 신랑이 운전을 못합니다.)

우리는 한동안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뭔지 모를 착잡함과 아직도 남아있는 찜찜함,

그리고 이 나라에서 새삼 느끼는 이질감,

억울함, 회의감, 화.

아마도 내가 알고있는 모든 치욕적인 감정을 다 경험한 하루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지금은 열흘이라는 시간이 치유해준 덕분인지 그때만큼의 격한 감정은 아니지만

싱가포르와 태국에 정이 떨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다가오는 10월달이 비자 만기일인데 죄 지은 것도 없으면서

비자연장할 때 문제가 생기진 않을지 괜시리 걱정이 앞섭니다.

정말 괜찮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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